나는 예술서를 좋아한다. 특히 쉬운 예술 교양서에 대한 말랑말랑한 애호가 있다. 책은 어느 정도 ‘블링블링’하게 사람들의 로망을 자극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나에게는 예술이 그런 것이다. 이 책은 저자나 책의 정체가 굉장히 숨겨져 있는 느낌인데, 실제로 읽다보면 가독성도 높고 무척 잘 읽힌다. 포장 면에서 일종의 의연함 같은 게 있어서 진입이 어렵지 손대면 쉽게 넘어가는 책이다. 저자는 사바나미술관에서 큐레이터를 시작해 현재 문화역서울284의 예술 감독으로 있으며 주로 대안 미술 공간들에서 기획일을 해왔다. 미술과 관련된 일을 하는 분 답지 않게 글이 쉽다는게 이 책의 장점. 현태준을 좋아했고, 국립현대미술관 젊은 모색 전을 가고, 상상마당의 서교육십 전시 등을 기억하는  딱 나 정도 관객의 눈높이에 좋은 책이다.




바나나 리포트

저자
김노암 지음
출판사
두성북스 | 2013-06-10 출간
카테고리
예술/대중문화
책소개
지금 여기 한국 미술 현장 스케치우리 미술, 미술인, 미술문화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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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은 말할 것 없이 사람의 마음과 관련이 깊다. 거울처럼 사람의 마음, 영혼을 반영한다. 나 또한 불안한 열정의 시기를 보낼 때 그림은 큰 위안이 디었다. 술 마시는 사람치고 악한이 없다는 말이 있는데, 그림 좋아하고 그림 그리는 사람 중에 정말 악한이 없다. 미술이 사람의 마음을 위안하고 달래주는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언제부텅니지 우리의 마음은 미술과 등 돌리고 점점 더 강렬하고 자극적이며 소위 돈이 되느냐 아니냐 하는 경제적이고 도구적인 잣대로 미술을 바라보는 습성이 생겨버렸다. 이전에는 미술이 아무리 복잡하고 난해하더라도 우리는 그것과 접촉하고 사색하며 바아들이는 여유와 관심이 있었다. 이러한 좋은 의미와 정서의 대중화는 적극 환영할 일이나 사실 지난 시기 우리 사회에서 진행되었던 미술의 대중화는 사람의 마음을 위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상처를 내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나 또한 직업적 전시기획자로서 이런 시류에 편승한다는 비난을 면키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나 자신이 대중문화를 즐기고 팝적인 미술을 선호한 까닭에 그렇고, 더욱이 한국 팝아트의 최신 경향을 소개하는 전시를 여러 차례 기획했던 터라 더욱 그렇다.” (9쪽)

“많은 젊은이들이 예술가나 전시 기획, 딜러 등 새로운 전문직에 뛰어들고 있고 열악한 환경과 상대적으로 낮은 임금에도 불구하고 새롭게 부상하는 분야로서 현대미술의 현장은 역동적이며 뜨겁다. 서울은 현대미술 분야에서 국제적으로 중요한 도시가 되었고, 더불어 대중들에게 현대미술이란 용어는 더 이상 낯설지 않게 되었다. 현대 미술은 이제 우리 시대의 아주 멋진 문화적 우세종이라 말할 수 있다.” (75쪽)

“몇 년 전 스티븐 레빗과 스티븐 더브너의 공저 <괴짜 경제학>(2005)이 국내에 소개되었다. 그 책에는 부모의 양육 과정에서 어떤 요소들이 아이들의 성적에 영향을 미치는지에 관한 연구 내용이 나온다. 아이의 성적과 상관관계가 높은 요소는 부모의 교육 수준과 사회적 지위가 높고 출산 시 엄마의 나이가 30세 이상이며, 아이의 출생 당시 몸무게는 저체중이고 부모가 집에서 영어를 사용하며 집에 책이 많은 것 등이다. 반면 아이의 성적과 관련이 없는 요소는 결손가정이 아닌 온전한 가족 구성, 주거 환경이 좋은 곳으로 이사하는 것, 아이가 유치원 가기 전에 엄마가 직장에 다니지 않고 육아에만 전념한 것, 부모가 박물관에 자주 데리고 가는 것, 아이를 정기적으로 체벌하는 것, 아이가 텔레비전을 보는 것, 부모가 거의 매일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는 것 등이다.
 이 책은 좋은 환경에서 자라는 것이 실제로 자녀가 공부를 잘하고 못하고의 문제와 특별한 상관관계가 없으며, 텔레비전 시청과 자녀의 학습능력 저하는 별 상관이 없음을 보여준다. 정작 자녀가 가장 큰 영향을 받는 요소는 ‘부모가 어떤 살마인가’라는 것이다.” (86쪽)

"대안 공간의 운영과 관련해 생각해보면 대략 다섯 가지의 요소를 떠올릴 수 있다.
첫째는 사람이고, 둘째는 사람들의 관계다.
셋째는 장소(공간)이며, 넷째는 때(시간)다.
마지막으로 다섯째에서 의견이 갈리는데 예술이념 또는 돈(자본)이다." (92쪽)

“좀 구태의연하지만 미학자 아도르노의 이야기를 덧붙이면, 그는 자본주의가 개인을 객관적인 사회적 추세에 단순히 순정하는 사람으로 만들었고, 따라서 예술가의 작품은 소비되는 상품가치를 상실할 때, 즉 반사회적일 때 비로소 예술적 존재 의의를 갖게 된다고 했다. 또한 미국의 사회학자 다니엘 벨에 따르면 소비지향적이며 자유기업적인 사회는 이미 과거와 같이 도덕적으로 시민들을 만족시킬 수 없고, 자유사회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새로운 공공철학이 창조되어야만 한다고 했다. 그 밖에도 많은 사상가들이 고도자본주의사회이자 첨단정보사회에서 어떻게 정당한 인간성과 문화와 예술을 고수하고 바런시킬 수 있는지 고뇌하였다. 아마도 대안공간이란 이런 서구사회의 선행적인고민에서 출발했다는 것을 부인할 수가 없다.” (96쪽)

“전시기획자로서 나는 도록 디자인에 대해 몇 가지 편견 또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 무엇보다 양장본으로 만든 도록을 대체로 많은 이들이 선호한다는 것이다. 해당 작가는 물론이고 주최자, 기획자 미술기자, 컬렉터 등등. 작가가 자신의 작품을 수록한 양장본 또는 하드커버로 만든 도록을 갖고 있다는 것은 현장에서 활동할 때 든든한 배경이 된다. 지극히 합리적이긴 하지만, 우선 양장본으로 만든 도록에 수록된 작가나 작품은 전문가나 일반 애호가들로부터 높은 신뢰를 받는다. 더욱이 천으로 된 양장본의 경우 거의 아우라가 생길 정도의 권위를 은연중에 만들어내기도 한다. 하지만 실제 영미권의 잘나가는 미술가들 중에서도 양장본으로 만든 도록을 지닌 이는 매우 드물다. 물론 그의 활동이나 예술 성과와는 상관없이 개인적으로 부유한 미술가들이 자비로 그런 고상하며 권위 있는 도록을 만드는 경우도 없지 않다.
몇몇 기획자나 작가들은 보통 표지로 쓰는 종이 두께보다 더 얇은 종이나 특수한 종이를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 경우는 시사적이거나 사회적인 개입을 표방한 작업을 선호하는 층의 열렬한 지지를 받는다. 이들은 대체로 젊은 작가이거나 해외 유학파인 경우가 많다. 그러니 현장 경험이 있는 이들은 포스터, 도록 등만 보아도 대략 해당 전시의 예산을 추측할 수 있다” (109쪽)

“미술 환경이 국제화되면서 전시 제목이나 도록에 들어가는 텍스트의 편집디자인이 매우 중요해지고 있다. 그런데 영문에 비해 국문은 서체의 종류가 매우 빈약해서 실제로 디자이너들은 영문을 선호한다. 국문을 쓸 경우 일반적으로 무난한 서체를 쓰고 글자 폰트를 가능한 작게 하여 글자가 문장으로 읽히지 않고 마치 기호나 조형적 요소로 보이도록 의도하기도 한다. 이럴 경우 노안이 일찍 온 이들이나 중년층 이상은 가독성 없는 디자인을 원망하며 매우 짜증스런 독해를 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어쩌면 미술 관련 도록은 읽기보다는 보기 우한 일종의 그림책처럼 디자인된다.
전시 홍보나 가이드를 위한 디자인은 사실 디자이너, 전시 기획자, 작가 그리고 주최자나 후원자의 취향과 의견이 만나는 교집합에서 만들어지는데, 실제 현장에서는 매우 어려운 작업이자 목표가 된다. 협업자들의 예술관과 사회성, 의사소통 능력에 따라서 전시나 전시 관련 디자인은 산으로 가기도 하고 바다로 가기도 한다.” (111쪽)

“박수근에 대한 관심과 함께 한 가지 재미있는 생각을 했다. 위작으로 의심되는 박수근의 위작으로 의심되는 박수근의 작품을 모두 박수근미술관에 기증하는 것이다. 해외 유명 미술관들이 모작과 위작으로 특별전시관을 꾸미듯 말이다. 기증 문화도 활성화하면서 위작으로 의심되는 작품들을 박수근미술관에 한데 모아 체계적이며 심도 있는 연구환경부터 만드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우리의 미술에 대한 과학적 인식과 예술적 감상 사이에 어떤 환영의 다리를 놓아 보는 것이다.” (131쪽)
 
“우리나라에서 연간 열리는 축제는 1200개가 넘는다. 그런데 축제의 양적 증가와 함께 축제다운 축제는 사라졌다는 소리도 점점 자주 듣게 된다. 90년대 중반을 지나며 지방자치제가 정착되고 지역 고유의 문화예술의 정체성과 지역 주민들의 여가 선용, 문화예술 향유권을 제공하려는 공공서비스의 요구와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한 관광자원이라는 필요가 만나 축제는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그것은 축제 기획이 정치적 또는 경제적인 기획과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는 이야기다.
지방자치 문화의 정착과 5일제 근무의 확산과 더불어 시민들의 여가를 선용하고 소비를 위한 행정지도가 자연스럽게 요구되었다고 하면 비약일까? 더욱이 관광 수입의 증대를 통해 안정적인 수익 구조 개선의 전략으로서 축제를 기획하고 다루는 것이 공공연한 현실이니 축제의 실제적 효과를 무시하는 것이 쉽지 않다.” (133쪽)

“미술을 느끼다 : 미술 감상
어떤 전시가 좋다더라.
어떤 작가가 좋다더라.
어떤 전시장이 좋다더라.
시간을 내어 (대신 점심이나 저녁을 포기한다)
전시를 본다.
저시장을 한 바퀴 두 바퀴 돌고
넓게 보고 좁게 보고
이리저리 보다 나온다.
저녁 퇴근 후 일기나 댓글을 단다.
사는 생각을 하다 잔다.
그것뿐이다.” (139쪽)

“한국 미술계에서 미래에 뛰어난 창작 활동이 기대되는 신예 작가를 찾는 기획과 절차는 매해 있어왔다. 대표적인 기획이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2년마다 열리는 <젊은 모색> 전이고 다른 하나로는 서울 시립미술관에서 기획한 <SeMA>전이다. 그리고 이 분야에 새로이 출사표를 던지는 기획이 <서교육십>인 셈이다. 미술계와 언론과 미디어들은 대체로 이와 같은 기획에 호의적이다. 그렇지 않겠는가? 어쨌든 재능 있는 미술가들이 지속적으로 나와 주어야 미술계의 미래가 점차 확대되고 풍요로워질 것이고 일반 시민들에게 새로운 미적 표현과 감상의 기회를 확대재생산하는 것이니. 물론 미술 시장, 미술교육시장, 기타 미술의 창작과 수용에 관련된 제반 분야의 미래가 약속되는 것이다. 어느 분야든 젊은이들이 과감히 뛰어드는 분야가 발전하는 것이 진리다.”(15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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